사색의 깊이가 강물처럼 깊어가는 계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정리하기 위해 평창을 찾았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사색하기 딱 좋은 날씨다. 자연이 가을색을 벗어 버리고 앙상해져가는 나뭇가지들이 마음속에 여운으로 남는다. 무미건조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담백하다. 바닥을 드러낸 듯한 쓸쓸한 모습들이 묘하게 위로가 된달까?
자연이 주는 치유, 밀브릿지
밀브릿지는 김익로라는 분께서 1950년대부터 1만여 그루의 전나무와 소나무 등을 식재해서 숲이 된 곳이라고 한다. 펜션과 카페가 있고 세개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모두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어제 눈이 내렸다 하더니, 촉촉한 기운덕에 숲 향기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나무와 풀, 흙냄새까지 자연의 향이 몸을 가득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올라가는 길 중간 중간 의자들이 눈에 띈다. 흔히 볼 수 있는 앞을 바라보는 의자가 아니다. 숲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치된 의자에 몸을 뉘어보니, 숲이 주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기분이 들었다.
밀브릿지에는 위장병과 피부병, 빈혈에 효과가 있다는 방아다리 약수가 있다. 몸에 좋다해서 한 모금 넘겨보았다.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건강에 좋다니까 한 모금 더 넘겨본다. 전나무잎들이 쌓인 길을 다시 걸어 본다. 폭신푹신하고 촉촉해 기분이 좋아지는 길이었다.
밀브릿지
강원 평창군 진부면 방아다리로 1011-26
문학의 향기, 효석달빛언덕
봉평면 창로리 언덕에 위치한 효석달빛언덕은 현대 문학의 대표적인 낭만작가인 이효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의 문학 세계를 기리기 위하여 고향 생가 근처에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봉평에서 농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맑고 푸른 강가에서 겨울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볼거리는 열 곳 정도 있는데 동선이 잘 짜여있어서 두어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둘러 볼 수 있다.
이효석 생가를 지나 근대문학 체험관에 들어갔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고 떨어져서 또 다시 쌓이는 것이다' 이효석 선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나오는 글귀다. 어느덧 겨울이 다가온 지금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다. 이외에도 선생이 대다수의 글을 썼다는 푸른 집, '꿈꾸는 달'카페까지 모든 곳이 가산 이효석 선생의 삶과 문학을 바탕으로 꾸며져 있었다. 내 삶을 그의 문학에 빗대어 추억해 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효석달빛언덕
강원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575-3
전나무를 품어 온 천년의 숲, 월정사 전나무길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주차장까지 걷는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주차 후 금강교를 지나면 양쪽으로 길이 나뉘어지는데, 왼쪽은 월정사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전나무 숲길이다. 약 1km정도라 가볍게 흙길을 밟으며 피톤치드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산책로다. 지나가는 어르신께서 맨발로 걸으면 더 좋다고 하신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으니 찬 기운이 확 느껴졌지만, 몇 걸음 걸어보니 맨발로 땅을 밟는 기분이 참 좋았다.
중간지점쯤에 할아버지 전나무가 있다. 600여년이나 된 이 나무는 안타깝게도 지난 2006년 태풍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텅 빈 껍질 속은 어른도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옆에서 보니 거대했던 나무의 크기가 짐작된다. 한자리에서 수백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변화하는 풍경들을 마주했을까 생각하니 그저 한그루 나무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오대산월정사전나무숲길
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아름다운 우리나라.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가 2020년을 준비하자!
글쓴이: 서지연 작가
20여년간 방송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글들을 담아왔다.
사람들과 공간, 여행 등 다양한 주제로 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