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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어쩌면 마주칠까, 그 길에서

610번과 617번 지방도를 따라

국도여행   

보령 출신의 소설가 이문구는 <관촌수필>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길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떠남과 돌아옴일 것이다. 이번 보령 여행은 지방도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고속도로가 동맥이라면 지방도는 모세혈관이다. 구석구석을 이어주는 끈이다. 보령의 실핏줄 같은 610번과 617번 지방도를 따라 콕콕 박혀 있는 풍경을 돌아보는 길로 떠난다.

글 유정열(여행작가)│사진 안홍범(여행사진작가)

 

 

 

 

어쩌면 마주칠까, 그 길에서

 

 

도로여행   

 

Day 1: 610번 지방도를 따라서

지방도를 따라가다 이윽고 다다른 곳은 햇살에 반짝이는 오천항이다. 그리고 길 끝에 '갈매못성지'가 있다. 갈매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의 '갈마'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일까? 갈매못은 목마른 자들의 쉼터가 되었다. 영적 생명을 구하는 이들의 성지가 된 이곳에는 비극이 스며 있다. 병인박해 때 이름조차 알 길 없는 500여 명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를 비롯한 신부 2명, 조선인 2명의 이름만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은 순교 후 118년이 지난 1984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성인품에 올랐다.
이들이 순교한 1866년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결혼이 예정된 시기였다. 한양에서 200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해야 탈이 없으리라는 이유로 그들은 이 오천항 모래사장 위에서 신의 곁으로 떠났다. 갈매못성지에는 예수성심상과 순교성인비가 바닷가를 따라 서 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스테인드글라스가 엄숙하게 빛난다.
갈매못성지에서 다시 '오천항'으로 향한다. 오천항은 보령시 북쪽에 있는 항구다. 주변 산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 바다가 태풍으로 요란을 떨어도 항구는 평안하다. 별도의 피항 시설이 필요 없을 만큼 지리적 조건이 좋아 예부터 어부들의 삶의 터였고 군사적 요충지였다.
오천항에 있는 '충청수영성'으로 가는 길 한쪽에서 아주머니들이 김장을 한다. 입맛 다시는 여행자에게 갓 담근 김치에 수육을 돌돌 말아 입에 넣어준다. 부들부들한 수육에 배추의 단맛이 돈다. 맛있다는 말에 아예 접시째 수북이 담아주며 말한다.
"이 시골까정 와가지구,
나눠 먹는 정밖에 더 있것디야."
양념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김치와 수육을 먹어 치우고는 충청수영성에 올랐다.
태조 5년 처음 군영이 설치된 자리가 충청수영성이다. 조선에는 3개의 수군 진영이 있었는데, 오천의 충청수영, 충무의 경상수영, 여수의 전라수영이다. < 세종실록지리지 >에 따르면 수영성에는 수군 8000여 명에 군선만 142척이나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수영성은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고 왜구 침탈을 방어하는 기지였다. 성의 가운데가 도로로 툭 잘려나간 것만 제외하면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성벽 위에 서면 오천항과 보령방조제, 멀리 원산도 앞 바다까지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 풍경이 가슴 안으로 들어온다.
수영성에서 나와 보령방조제 가는 길에 있는 '팔색보령수필전망대'로 향했다. 이문구의 소설 < 관촌수필 >에 나오는 8개의 주제를 모티브로 하여 조성한 곳이다. 이곳에 서면 보령의 북쪽 일대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보령화력발전소, 오천항, 수영성, 보령방조제 등 저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에 있다,

 

국토여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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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잔잔한 물결과 크고 작은 어선 들이 어우러진 오천항.

 · 2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가 어우 러진 한화리조트/대천 파로스의 모듬해물전골.

 · 3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갈매못 성지. 전시관 내 붉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이다.

 · 4 보령의 바다와 들판을 조망할 수 있는 팔색보령수필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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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여행  

 

 

Day 2: 617번 지방도를 따라서

이튿날 아침 일찍 '보령호'로 향한다. 보령호가 있는 미산면 동오리에서 늑전리로 향하는 길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이 있다. 이곳에서 양각산과 아미산의 품속에 놓인 보령호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멀리 양각산 아래 수면은 물안개가 햇살 덕분에 펄펄 끓는다. 물안개는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사라진다. 아쉬운 찰나의 비경이지만 마음은 따습다. 보령호는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617번 지방도를 따라 미산면에서 미산중학교까지다.
그렇게 성주천을 곁에 두고 달리면 '개화예술공원'에 닿는다. 보령은 천년을 견딘다는 검은 돌 '오석'으로 유명하다. 오직 보령에서만 난다. 오석은 갈면 검은빛을 띠고 깎으면 점점 하얗게 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비석이나 고급 벼루를 만드는 데 이용했다. 서울 탑골공원의 3.1독립선언문 비석, 독도수호표지석 등도 오석으로 제작됐다. 개화예술공원에서는 매년 열리는 국제 조각 심포지엄을 통해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오석을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한다. 조각 작품을 보며 느긋하게 산책하는 기분이 좋다.
개화예술공원에서 2km 떨어진 곳에 '석탄박물관'이 있다. 석탄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다. 석탄 채굴에서 무연탄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광부들의 삶을 조명했다. 2층으로 향하면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보령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은 모두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 돼 추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재미있는 것은 박물관 내 설치된 수직갱 엘리베이터다. 지하 400m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효과만 준 것인데도 실제처럼 느껴져 스릴 넘친다. 그렇게 모의 갱도에 들어서면 광부들이 석탄을 채굴하는 모습을 실물처럼 꾸며놓았다.
석탄박물관을 나와 '성주사지'로 향한다. 허허벌판에 4개의 탑과 비석만 남은 폐사지지만 과거의 위엄을 지금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주사는 무열왕의 8세손인 낭혜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오합사였다. 오합사에서 낭혜화상의 덕이 널리 알려지자 신라 조정에서 성주사란 이름을 내렸다. 성주사지의 유일한 전각 안에 있는 것이 낭혜화상탑비다. 비문은 고운 최치원이 짓고 그의 사촌이 글을 썼다. 한때 2000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던 성주사지, 새로 이룬 것이 없는 사찰터는 스스로 세월을 우아하게 보내고 있다.
성주사지에서 보령시로 가는 길에 옥마산이 있다. 옥마산에는 보령시를 조망하는 '활공장'이 있다. 활공장은 성주터널에 진입하기 전 옥마산으로 향하는 옛길로 가야 한다. 이 길은 보령시와 성주, 부여를 이어주던 구절양장의 옛길이다. 옛길 중간에 있는 옥마정 갈림길에서 옥마산 활공장으로 향한다. 활공장에 서자 구름이 해를 삼키고 바람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세차게 불어온다. 바람을 가르며 보령의 하늘을 탐하는 이카루스의 성지가 이곳이다. 말을 잊은 채 우두커니 서서 높고 아득한 바다와 보령의 길을 바라본다.
길에서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여행자는 새로운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그 풍경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무대가 된다. 그래서 길은 누군가의 혹은 우리가 주인공인 드라마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다시 사람에게 추억을 안기는 소중한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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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옛 시간이 머물러 있는 보령 성주사지. 폐사지지만 여전히 그 위엄을 느낄 수 있다

 · 2 세계 각국의 조각 예술품이 전시돼 있는 개화예술공원.

 · 3 보령과 서해를 한눈에 조망하고, 푸른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옥마산 활공장.

 · 4 탄광 도시 보령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보령석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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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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