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교익(맛칼럼니스트)
호호 불며 먹던 그 시절이 그리워
'나도 한때 청춘이었다'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먹는다
한반도에 밤나무가 자생한다. 기록을 보면 산과 들에 흔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먼 선사시대 때부터 밤을 먹었는데 기호식품이라기보다는 구황식품에 가까웠다. 부러 키운 것은 아니고 산에 그냥 있던 나무였을 것이다. 1950년대 이 토종 밤에 시련이 닥쳤다. 밤나무혹벌이라는 해충이 크게 번져 수많은 토종 밤나무가 말라 죽었다. 그래서 1962년생인 내 나이 때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 밤은 오히려 귀한 음식이었다. 설날 제사에 올리는 밤도 내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196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일었다. 정부는 유실수 심기를 적극 권장했고, 그 나무 중에 밤나무가 있었다. 대부분 일본에서 가져온 단택(丹澤), 은기(銀寄), 축파(筑坡) 같은 품종이었다. 그중에 단택이 크게 번졌는데, 구우면 속껍질이 잘 벗겨져 군밤용으로 딱 좋았기 때문이다. 이후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선발된 품종도 심었다. 대표적으로 옥광과 대보다. 크기는 대보가 위고, 달고 맛있기로는 옥광이 위다.
새마을운동 덕분에 19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밤이 흔해졌다. 겨울이면 골목에 군밤장수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연탄불 위에 밤을 구워서 팔았다. 군밤장수가 노린 것은 '데이트족'이었다. 데이트할 때 남자는 여자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허세를 부리기 마련이다. 서울이면 종로와 충무로의 영화관, 남산 아래 명동, 덕수궁 돌담길. 군밤장수는 이런 곳에 늘 있었다.
요즘은 그 장소에 가도 군밤장수를 보기 어렵다. 좌판을 단속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쟁력이 없어서다. 거리에 서면 세계의 유행을 따르는 온갖 먹거리가 지천이다. 군밤은 그 앞에서 초라하고, 그러니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군밤장수를 볼 수 있는 곳은 재래시장이다. 도시의 재래시장에서 겨우 군밤이 버틴다. 모퉁이에서 연인의 손에 군밤을 들려주었던 추억이 있는, 머리에 서리가 앉은 이들이 군밤을 사서 먹는다. '나도 한때 청춘이었다'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먹는다.
봉황자연휴양림
충주 울궁산(398m)에 자리 잡은 휴양림으로, 산림욕장은 참나무, 소나무, 낙엽송, 밤나무가 주를 이루고, 등산로 겸 산책로는 경사가 완만해 좋다. 서바이벌 게임장에서는 팀을 나누어 서바이벌 게임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르다.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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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충북 충주시 가금면 수룡봉황길 540
· 문의: 043-850-7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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