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질리지 않는 눈놀이, 마냥 좋은 눈
혼자만의 눈놀이
겨울 아침, 눈을 뜨면 그대로 누운 채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밖에서 평소보다 한 톤 올라간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지, 나무판으로 바닥을 긁어 눈을 치우는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오랜 습관으로 겨울 아침에 눈을 뜨면 저절로 몸이 숨을 죽이고 귀를 연다.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눈이 적절하게 쌓인 곳에 자리하곤 중대한 의식을 행하듯 눈 한 꼬집을 집어 뭉쳐지는 정도를 가늠한다. 뭉침 정도가 좋으면 그대로 눈사람을 만들고, 뭉쳐지지 않는 상태라면 준비해간 인형을 꺼내서 눈사람을 대신한다. 인형을 들고 서서 생각하다 '겨울 눈놀이라면 역시 고전 러브스토리지…' 하며 인형을 눈 위로 눕혔다. 눈은 그냥 좋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한참 더 들더라도 눈 오는 아침에는 벌떡 일어나 눈밭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은 어떤 눈을 만날까 기대하며 인형을 들고 눈밭을 향하는 오래된 나만의 의식, 이 눈놀이를 오래도록 계속하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 공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