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민수
'달팽이 목사' 혹은 '들꽃 목사'로 알려진
그는 최근작 <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 > 외 다수의 들꽃과 자연 관련
산문집을 냈다.
알알이 붉게 물들어가는 그 시절이 그리워
잘 익은 수수가 붉게 물들어 높은 하늘만큼 자라면 한 다발씩 묶어두던 빗자루도 되었다가 미술시간 알록달록 바람개비도 되었다가 어린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하루가 다르게 쪽빛으로 높아가는 가을 하늘, 키가 훌쩍 큰 수수들은 누가 더 높이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듯하다. 수수가 붉게 익으면 떠오르는 추억 의 단편들이 있다. 해님과 달님, 호랑이, 바람개비와 안경, 수수부꾸미와 팥떡…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 아먹~지"로 시작하는 동화 <해님 달님>에서 오누이를 쫓던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이 끊어져 수수밭으로 떨어진다. 그때 수수밭을 물들였다는 호랑이 의 붉은 피는 수수알은 물론이고 수숫대를 벗겨봐도 고스란히 묻어 있다.
예부터 수수의 붉은색은 잡귀를 쫓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색이었다. 그래서 자손이 번성하고 아이의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아이 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첫돌 때 수수팥떡을 밟으면 아이가 잘 넘어지지 않는다 하여 일부러 밟게 하기도 했다. 수수에 목숨 수(壽)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수수를 자칫 '사탕수수'처럼 달큰한 맛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탕' 자가 붙지 않은 수수는 이름대로 그냥 수수한 맛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는 일부러 해주는 수수팥떡이나 수수부꾸미 같은 별미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단맛과 쓴맛을 다 보며 인생의 굴곡을 지나온 지금, 붉게 익어가는 수수밭을 바라보면 그 이삭 속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툭툭 들어와 박 힌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그 수수한 맛이 그리워진다.
+ 봉평장터 수수부꾸미 & 수수팥떡
수수밭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시골길을 지나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 인 봉평장터다. 둥글게 반죽한 떡에 담백한 수수팥을 묻힌 수수팥떡과, 수수부침 속에 팥소 를 넣고 노릇하게 지진 수수부꾸미는 봉평장터의 별미다.
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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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강원 평창군 봉평면 동이장터길 14-1
· 문의: 33-336-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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