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다 시(詩)다. 뿌리가 어둠 속에서 캐 올린 마술이다. 꽃은 식물들의 상상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단추다. 꽃은 벌과 나비의 직장이고 밥상이다. 꽃은 곱게 떨리는 연애편지다. 꽃나무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고 꽃나무 아래서 사랑을 고백받고 싶었다. 꽃은 마음 흔들림의 진원이고 흔들리는 마음을 잔잔하게 다독여주는 방파제다.
그중에도 봄꽃의 절정은 역시 벚꽃이다.
벚꽃은 어울림의 꽃이다. 한 나무에 수천, 수만 송이 꽃이 핀다. 이 꽃송이들이 어우러져 나무 한 그루가 마치 꽃 한 송이처럼 피어난다. 이렇게 피어난 한 그루, 한 그루의 커다란 꽃송이들이 다시 어우러지며 거대한 꽃구름이 되고 끝없이 이어지는 꽃 파도가 된다. 어디 이뿐인가. 벚꽃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람 꽃을 피워 놓는다. 가족을 불러 모아 가족 꽃을 피워 놓고 동창생들을 불러 모아 동창생 꽃을 피워 놓는다. 외롭게 혼자 나들이 나온 사람은, 몸소 품어 꽃이 되게 한다. 벚꽃은 길을 지우고 사람을 지워, 모두 꽃으로 피어나게 한다.
또 벚꽃은 마음에 피는 등불인가 보다.
하복으로 갈아입은 첫날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하던 중학교 운동장처럼, 금빛 벼 이삭 출렁이는 들판처럼, 밤새 눈 내린 날 문을 열면 펼쳐지던 풍경처럼 벚꽃이 피면 세상이 온통 환해진다. 봄날 환한 곳을 찾아가면 그곳에 벚꽃들이 어우러져 피어 있다. 벚꽃 잎처럼 작고 그 수가 많은 것들은 그렇게든 모여 쉽게 하나가 되나 보다.
마치 산에 나무들이 모여 숲이 되듯이.
그런 벚꽃을 결혼하고 나서는 제대로 구경 한 번 못했다. 결혼을 하고 인삼 장사를 시작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 보니 아내와 같이 꽃 구경 한 번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작년엔 날을 잡아보기도 했지만 갑자기 내린 비에 시기를 놓쳤다.
올해는 열 일 제쳐두고 산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 안사람에게 이렇게 말해보리라.
오늘 우리도 가게 문 일찍 닫고 벚꽃이나 보러 가지! 꽃들이 1년에 한 번, 1년 걸려서 쓴, 계절이 페이지를 넘겨버리면 볼 수 없는 시가 활짝 피었다는걸 가자고.
벚꽃들이 우리 마음을 가볍고 환하게 들어 올려줄 거야. 벚꽃이 우리도 환하게 피워줄 거야!
글 함민복(시인)